[영화 읽어주는 여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다크 트루스>

인쇄하기

‘시장에 맡기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자유 시장을 믿어야합니다.’ 살면서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말이자, 현 시대를 지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논리에 따라 전 세계의 많은 공영사업이 민영화가 되었고, 우리나라 역시 그 추세를 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민영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아홉 번째 영화 <다크 트루스>에서 확인해 보세요.


 

 “시장에 맡겨두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시장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뿐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말입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각자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선택할 때, 자원은 가장 완벽하게 분배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부는 시장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는 규제를 없애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시장이 자유로워지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다크 트루스>입니다.

 

마을 사람들을 죽여라

 

군용차에 탄 군인들이 도망가는 마을 주민들에게 총을 쏘며 무차별 공격을 합니다.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들은 뒤엉켜 있고, 주변은 시꺼먼 연기와 함께 불타고 있습니다. 에콰도르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수도 사업을 하는 다국적 기업 ‘클리어 백’. 이 기업은 에콰도르 타이카 지역에 정수 시스템을 설치했습니다. 하지만 정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살에 붉은 반점이 돋아 결국 죽음에 이르는 티푸스가 마을에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업 확장을 앞두고 있던 클리어 백의 대표 브루스는 기업의 과실을 없애기 위해 학살이라는 잔혹한 결정을 내립니다.

 

“당신 회사가 우리 가족을 죽였어. 온 마을 사람들을 죽였다고!”

 

군인의 총에 맞아 어머니를 잃은 에콰도르 청년은 본사가 있는 토론토를 찾아가, 브루스의 여동생인 모건 앞에서 총구를 자신의 입에 겨눕니다. 오빠의 허수아비로 살았던 그녀는 청년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집니다. 이 사건으로 진실을 밝히려는 자와 진실을 덮으려는 자, 이들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진실을 파헤쳐라

 

“너의 행동으로 인해 클리어 백은 파멸에 이를 거야!
아빠가 하던 말 기억해? 옳은 일을 하는 데에는 옳고 그른 시점이 없다는 말.”

 

 

오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건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직 CIA 요원인 베고시언은 에콰도르로 보냅니다. 그의 임무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프랜시스를 토론토로 데려오는 것. 군인들의 눈을 피해 달아난 프랜시스를 찾기 위해 베고시언은 총 한 자루를 들고 밀림으로 들어갑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베고시언은 멀리 가지 못하고 프랜시스에게 붙잡힙니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베고시언은 고백합니다. 당신을 찾으러 왔다고.

 

“어서 달아나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그렇게 프랜시스를 데리고 토론토에 도착한 베고시언. 이제 프랜시스를 모건 앞으로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기를 원하지 않는 자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총성. 희망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베고시언은 뜻밖의 행운을 만납니다. 브루스가 고용한 암살자의 배신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그 덕분에 추악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냅니다.

 

물 사용권을 팔아야 국가가 살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에 살고 있는 마리아나 리아씨는 얼마 전 새로 지어진 임대 아파트로 이사를 왔습니다. 전에 살던 집보다 깨끗한 환경은 마음에 들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물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그녀의 가족은 오직 60리터의 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빨래를 돌리고 나면 요리를 하거나, 샤워하기조차 벅찹니다.

부족한 물을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물탱크가 실린 커다란 트럭이 마을에 도착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빈 통에 물을 가득 담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샤워를 하면 온 몸에 빨간 반점이 돋아나요.”

 

돈이 없으면, 물을 구할 수 없는 인도네시아 사람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위기로 몰아넣었을까요?

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아시아 국가들은 경제 위기에 허덕였습니다. 인도네시아 역시 불어나는 부채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차관을 요청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세계 금용 기구가 내세운 조건 중 하나는 ‘수도 민영화’였습니다. 비효율적인 공공 서비스를 민간에 넘겨 수익을 높이고, 시민들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1998년, 인도네시아 정부는 프랑스, 싱가포르의 다국적 기업과 계약을 맺고 상수도 사업을 시작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끊임없이 오르는 비용입니다. 민영화 전, 1,000리터당 140원에 불과했던 물은 2014년 580원으로 올랐습니다. 자카르타의 상수도 요금은 다른 도시와 비교해도 높은 편입니다. 같은 양의 물을 서울에서는 571원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용이 오른 만큼 시설이 나아지지도 않았습니다. 민영화가 된 지 20년이 지났지만, 자카르타 주민 중 수도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59%에 불과하며, 수도를 이용할 수 있는 지역조차 안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낙후된 수도관 절반에서는 물이 새고, 그 구멍을 통해 오염 물질이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인도네시아의 비정부기구인 ‘물 권리를 지키기 위한 시민연대(KRuHA)’의 홍보담당자 모하메드 레자씨가 말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물 문제는 자카르타 정부의 상수도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수돗물은 공공재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돈을 지불할 수 있는 고객만 살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전 세계를 뒤흔드는 ‘수도 민영화’

 

출처: Mona Caron

2000년 4월, 볼리비아 코차밤바에서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8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나오자 정부는 결국 계엄령까지 선포했습니다. 코차밤바의 시민들과 정부, 기업을 둘러싼 갈등은 1년 동안이나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6명이 숨지고, 175명이 다쳤습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목숨을 걸고 싸웠을까요?

 

“물 민영화는 죽음과 삶의 문제다!”

 

1998년, 경제 위기를 겪고 있던 볼리비아는 세계은행에 차관을 요청했습니다. 세계은행은 수도 민영화를 해야만 2500만 달러를 빌려줄 수 있다고 못 박았고, 결국 우고 반세르 대통령은 법을 개정해 가며 수도 민영화를 받아들였습니다. 미국의 백텔, 영국의 인터내셔널, 이탈리아의 에디슨 등 다국적 기업들은 상하수도 운영 독점권을 따냅니다. 기간은 무려 40년입니다.

그 뒤, 재앙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수도세는 매 월 35%씩 올랐고, 민영화 1년 만에 물 값은 300%나 뛰었습니다. 비싼 수도요금을 감당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시냇물과 강물에서 물을 퍼오거나, 빗물을 받아 사용했지만, 기업은 이 사람들에게 벌금을 물리며 물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돈을 지불하지 않는 농가는 물 공급을 차단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에 시민들은 길거리로 뛰쳐나왔고, 다국적 기업에 물러날 것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2000년 10월, 볼리비아 정부는 수도 통제권을 다시 돌려받으며, 갈등은 끝이 났습니다. 시민들의 연대가 물 권리를 지켜낸 것입니다.

볼리비아의 사례는 물 민영화로 피해를 받은 다른 국가와 시민들에게 본보기가 됐습니다. 인도 케랄라 지방에는 코카콜라 공장이 들어선 후, 지하수량이 급속하게 줄어들어 사람들이 사용할 식수와 농업용수가 부족해졌습니다. 주민들은 코카콜라를 상대로 싸움을 벌였고, 2005년 코카콜라는 공장을 폐쇄했습니다. 2015년 인도네시아에서도 의미 있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오랜 기간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온 시민단체 덕분에 ‘자카르타에서는 더 이상 수도 민영화를 하지 않는다’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출처: Corporate Water Footprint

수도 민영화를 반대하는 세계적인 흐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습니다. 2007년 세계은행의 수도 민영화 프로젝트는 85개에 달했지만, 2013년도에는 22개로 줄었습니다. 이는 지난 10년간 진행됐던 다른 프로젝트에 비해 실패율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민영화 실패율을 보면, 수도 34%, 에너지 6%, 대중교통 3%로, 다른 분야에 비해 꽤나 높은 기록을 보이고 있습니다.

출처: 세계시민교육 보니따

 다국적 연구소를 비롯한 3개 기관에서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5년 간 35개 국가 180개 도시에서 민영화가 철회되거나, 다시 공영화로 바뀌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세계시민교육 보니따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리 역시 수도 민영화 문제에서 안전하지는 않습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국 상수도 사업자를 5개로 통폐합해, 물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민간단체 위탁이 점차 증가해 162개 지방자치단체 중, 21개의 지자체가 민간위탁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 결과 국내 기업을 비롯한 해외기업까지 진출해 있는 상황입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민간위탁 계약을 체결한 논산시. 수자원공사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할 때보다 기업이 운영할 때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은 매우 달랐습니다. 사회공공연구소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공동으로 발간한 ‘한국의 물정책, 시장화의 문제점과 공공수도 대안’ 보고서에 따르면, 논산시 가정용 수도요금은 우리나라 평균보다 26% 비싸고, 업무용과 영업용 평균보다는 각각 46%, 22% 더 비쌉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논산시는 위탁 계약을 체결하면서 자체 정수처리시설을 폐쇄했고, 매년 50억 원에 이르는 물을 주변 지역에서 구매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이 결과, 2012년까지 논산시의 민간위탁 비용은 약 3배 이상 증가했습니다. 국토환경연구소의 최동진 연구원은 말합니다.

 

“수도 산업 민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독점을 어떻게 규제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독립적으로 운영되면서 공공성을 목표로 하고 공적 규제를 받는 경우와 최대 이윤의 확보를 목표로 하는 조직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물 정책은 국가 주도에서 기업 주도로, 공공성보다는 시장성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빵 한 조각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젠 물 한잔 제대로 마실 수 없게 된 거죠.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환경운동가 프랜시스는 잭 베고시언의 라디오 프로그램 ‘진실’에 출연해 드디어 기업의 추악한 이기심을 밝혀냅니다. 물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것임을, 미래세대를 위해 물을 보전해야 한다는 것을, 안타깝게도 이런 당연한 진실을 말하기까지 너무나 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어야 했습니다.

세상에는 분명 돈으로 사고팔 수 없는 게 있습니다. 민영화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가치를 우선시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영화는 묻습니다. 당신의 믿음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