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읽어주는 여자] 누구나 뭐든지 될 수 있을까? <주토피아>

인쇄하기

‘말하는 대로 현실이 된다.

‘꿈을 꾸고 노력하면 이루어진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보고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지는 거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 자기 계발서에 있는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말처럼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습니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차별과 편견이 없으며, 성별에 관계없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곳! 영화 <주토피아>입니다.

 

주토피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도시 주토피아. 그래서 수많은 동물들이 주토피아에 살기를 꿈꿉니다. 이 도시가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동물을 평등하게 대하는 포유류 통합정책 덕분입니다. 주인공 주디 홉스도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주토피아로 향합니다.

“많은 동물이 꿈을 이루려고 주토피아에 오고 있지.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해. 타고난 것은 못 바꾸니까.”

IE002117885_STD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주디를 비롯한 많은 동물이 높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경찰학교 수석 졸업이라는 영예를 안고서도 주디에게 떨어진 임무는 주차 단속이었고, 시장의 보좌관 벨 웨더는 양들의 표를 얻기 위한 얼굴 마담일 뿐 정작 중요한 업무는 맡지 못했으니까요.

 

포유류 실종 사건을 해결하라!

그러던 어느 날, 14마리의 포유류가 실종된 사건이 발생합니다. 드디어 주디에게 능력을 증명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보고 서장은 토끼가 중요한 사건을 맡는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포유류 통합 정책을 앞세우는 벨 웨더 보좌관의 말에 어쩔 수 없이 주디에게 사건을 맡게 합니다. 하지만 조건이 붙습니다.

“48시간을 주겠다. 만약 실패하면 당장 그만둬.”

IE002117887_STD

 

서장의 으름장에도 사건을 맡은 주디는 의욕적으로 사건 해결에 나서지만, 역시나 모두의 예상대로 사라진 14마리의 포유류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이 힘을 보태면 사건 해결이 더 쉬웠겠지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동료들도 없었습니다. 다행히 벨 웨더 보좌관의 도움으로 CCTV를 확보한 주디는 결국 실종된 동물이 있는 곳을 찾아내며 한순간에 주토피아의 영웅으로 떠오릅니다.

 

초식동물 vs. 육식동물

“생물학적 요소와 관련돼 있을 거예요.”

14마리의 포유류가 맹수가 된 이유를 주디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 말의 파장은 대단했습니다. 라이언 하트 시장은 이 일을 묵인했다는 혐의로 시장직에서 쫓겨났고, 온 도시에는 육식 동물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집니다. 주디의 말 한마디에 평화로웠던 주토피아는 한 순간 분열되어 버렸습니다.

 

드러난 진실

육식 동물이 맹수가 되는 이유가 본성 때문이 아니라 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디. 그 배후를 밝히기 위해 노력합니다. 추적 끝에 마주한 범인은 벨웨더 보좌관이었습니다. 라이언하트 시장이 사임을 한 뒤 그녀는 주토피아의 시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무시당하고 인정 못 받고 사는 거, 지긋지긋하지 않아? (중략) 생각해 봐. 주토피아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 초식동물들이 하나가 되면 아무도 우릴 막지 못해.”

초식 동물이라는 편견에 맞서는 방법으로 벨 웨더가 택한 방법은 바로 분열이었습니다.

 

벨 웨더는 왜 악당이 되었는가?

영화 속 벨 웨더를 보고 흔히들 악당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약으로 육식 동물의 본성을 깨우고, 이를 통해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을 분열시켜 시장의 자리를 차지했으니 결과만 놓고 보면 그녀는 악당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도대체 왜 벨 웨더는 악당이 되었을까요? 바로 편견이 쌓아 올린 보이지 않는 벽 때문입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주토피아에 가면 정말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주디와 벨 웨더는 작은 초식 동물이라는 이유로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받지 못합니다. 현실 속에서 이 말은 ‘덩치 큰 육식 동물들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벨 웨더가 시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 막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벨 웨더의 범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개인의 범죄일까요, 아니면 불평등한 사회의 결과일까요?

 

 

현실 속 작은 초식 동물

현실 속 주디 홉스와 벨 웨더는 누구일까요? 이 둘의 공통점은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주도적으로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입니다. 도시의 치안을 책임지는 경찰서장 보고와 주디를 제외한 경찰관들, 시장 라이언 하트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영화 속 모습은 정확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IE002117889_STD

전 세계 100명의 노동자가 있다면 59명만 임금을 받으며 일합니다. 임금 노동자 중 38명은 남성이며, 21명이 여성입니다. 나머지 41명은 임금 없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중 10명은 남성, 31명은 여성입니다. 이 수치는 그리 오래된 자료도 아닙니다. 2015년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간한 인간개발보고서 통계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벨 웨더가 꿈꿨던 지도자의 현실 속 상황은 어떨까요? 양성평등지수에 따르면, 전 세계 평균적으로 국회의원 10명 중 2명만이 여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나라별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일하는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라는 제목으로 OECD 국가별 유리천장지수를 발표했습니다. 고등교육 격차, 경제활동 참여 비율, 임금 격차, 보육비용, 고위직 여성 비율, 의회 내 여성비율, 남녀 육아휴직 비율 등이 반영된 점수입니다.

1위는 82.6점의 아이슬란드가 차지했고, 그 뒤를 노르웨이(79.3점), 스웨덴(79점), 핀란드(73.8점), 헝가리(70.4점)가 이었습니다. 하위권에 있는 국가로는 28.8점의 일본이 27위, 27.2점을 받은 터키가 28위, 한국이 25점을 받아 꼴등을 차지했습니다. OECD평균이 56점이라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IE002117891_STD

우리나라는 도대체 왜 이렇게 점수가 낮은 걸까요? 여성가족부에서 작년에 발행한 성평등 보고서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평등을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영역은 교육이었습니다. 남녀 교육수준은 여성 10.9년, 남성 12.4년으로 거의 비슷했으며,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오히려 여성이 더 높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역은 여전히 취약합니다. 가사 노동과 보육은 여성이 훨씬 더 많이 분담하고 있습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남성에 비해 20%이상 낮고, 육아휴직의 경우 여성 대비 남성의 비율이 4.5%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고위직 공무원, 국회의원, 관리자 비율을 포함한’의사 결정’ 영역의 경우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IE002117892_STD

‘누구나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

영화에서처럼 우리도 끊임없이 듣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무엇이든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가능성과 확률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모두가 행복한 나라

하나, 남녀 비율이 동등한 이사진을 꿈꿉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양성 평등을 실현하고 있을까요? 2015년 세계 양성평등지수 2위,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1위, 정치적 의사결정 능력에서 3위를 하고, 더 나아가 올해부터는 양성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여성의 군복무를 의무화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북유럽에 위치한 노르웨이입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10%조차 넘기지 못했던 노르웨이였지만, 지금은 양성평등 선진국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단기간에 어떻게 이런 성과를 일궈냈을까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양성평등 정책으로는 2003년에 통과된 ‘40% 양성 할당제’가 있습니다. 이 정책에 따라 공기업을 비롯한 일정 규모 이상의 큰 기업은 남녀 비율이 적어도 40%이상인 이사진을 조직해야 합니다. 만약 한쪽 성이 40%가 넘지 않을 경우에는 벌금을 내거나, 최악의 경우 폐업될 위기에까지 처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정책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2004년 9%밖에 안 되던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현재는 41%에 이르고 있습니다.

 

둘, 엄마, 아빠모두 출산 휴가를 써주세요

이번에는 일하는 여성이 살기 좋은 나라 2위를 기록한 스웨덴에서 어떤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전 세계를 막론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보육’입니다. 아이를 기르는 일은 엄마만의 역할일까요? 스웨덴 정부라면 ‘육아’는 모두의 역할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스웨덴 정부는 엄마, 아빠 모두가 출산 휴가를 써야 한다는 ‘육아 휴직 할당제’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 단절은 스웨덴에서도 큰 사회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1995년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웨덴 정부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정부의 철학에 따라 남녀 모두에게 육아 휴직을 할당하는 ‘부모 할당제’를 도입했습니다.

현재 스웨덴에서는 아이가 태어난 가정에게 부부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480일의 유급 육아 휴직을 부여하는데, 부모 할당제 정책에 따라 엄마, 아빠가 각각 의무적으로 사용해야만 하는 육아 휴직 기간 90일(총180일)이 있습니다. 할당된 90일의 육아 휴직은 양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만약 아빠가 90일의 육아 휴직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가정은 전체 480일의 육아 휴직 중 390일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육아 지원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정부는 재정 지원을 통해 부부가 안정적으로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부부가 받은 육아 휴직 480일은 유급 휴가로, 스웨덴 정부는 이 중 390일은 급여의 80%를 보장하며, 나머지 90일 동안은 매일 일정 금액을 각 가정에 지급합니다. 학생 또는 실업자, 저소득 계층에게는 최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합니다. 또한, 부부에게 할당된 480일은 자녀가 8세가 될 때까지는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으며, 원하는 경우에는 시간 단위로 나눠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정부의 노력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요? 스웨덴사회보험청 자료에 따르면, 2014년 육아 휴직을 신청한 사람은 남성이 45%, 여성이 55%였습니다. 스웨덴에 사는 젠스씨는 할당제가 도입되면서부터 남성육아 휴직자가 많아졌다고 말하며, 육아 휴직에 대한 소감을 말했습니다.

“육아 휴직 전에 아이들에게 나는 아이패드보다도 못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보다 나를 더 많이 찾을 정도로 위상이 회복됐습니다.”

물론 여전히 한계는 있습니다. 육아 휴직 기간을 보면 평균적으로 남성이 39일, 여성이 94일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2000년 남성들의 육아 휴직일은 전체의 12%밖에 되지 않았지만, 2014년 그 수치가 2배 이상 늘어 25%가 됐기 때문입니다. 육아 휴직에 대한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향상되고 있는 것입니다.

 

셋,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양성평등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의식의 전환입니다. 하지만 양성평등 교육은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양성평등 교육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국립 유치원 에갈리아(Egalia)의 이야기입니다.

에갈리아 유치원에는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책꽂이에 공주 이야기가 담긴 동화책이 없고, 선생님들이 남자 아이나 여자 아이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없습니다. 장난감에도 구분이 없습니다. 자동차에서 요리도구 그리고 인형 놀이까지 모두 한데 모여 있어, 누구나 원하는 장난감을 눈치 보지 않고 가지고 놀 수 있습니다.

물론 에갈리아에서만 볼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스웨덴의 대다수 유치원에서도 남자 선생님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에갈리아에서는 10명 중 4명이 남자 선생님입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에갈리아 유치원이 아이들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원장 로타 라자린씨는 말합니다.

“성 중립 정책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보입니다.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훨씬 잘 어울려 놀고, 남자 아이가 ‘다른 남자애들하고만 놀래요’라는 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아이들이 성별에 따라 구분하지 않고, 모두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이 되기 위해

2015년, 캐나다의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취임을 하면서 새로운 내각이 들어섰습니다. 그 구성원은 여자 15명, 남자 15명에 연령도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합니다. 캐나다 역대 최초로 동등한 남녀 비율을 가진 내각이 탄생한 것을 본 기자들은 총리에게 그 연유를 묻습니다.

“지금은 2015년이기 때문입니다.”

양성 평등을 이룬 국가의 공통점은 오랜 시간 성평등을 위해 시민과 정부가 힘을 합쳤다는 점입니다. ‘여자답다’, ‘남자답다’는 말로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정부에 의사 표현을 하고, 정부는 튼튼한 정책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권리가 존중받는 세상, 이제는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요?